스포일러 주의
이 글은 〈브랜드 뉴 데이〉의 결말과 엔딩 크레딧까지 전부 다룬다. 아직 안 봤다면 뒤로 가기를 권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왜 하필 〈왓 이프…?〉 포맷으로 다시 짜봤는지
- 브랜치 포인트: 피터의 멘토가 배너가 아니라 맷 머독이었다면
- 파급 효과: 헐크의 빈자리를 퍼니셔가 채울 때 생기는 감정선 대칭
- 없던 두 번째 엔딩 크레딧을 하나 더 써본다면
브랜드 뉴 데이를 4면 ScreenX로 보고 왔다. 천장까지 화면이 확장되는 세계 유일 포맷도 좋았지만(상영관별 차이는 이전 글에 정리해뒀다), 정작 극장을 나오면서 계속 곱씹은 건 편집이었다. 보여줄 건 보여주고 감출 건 감춘다 — 예고편이 원래 이래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이 정도로 절제된 편집은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영화를 곱씹다 보니 “내가 각색자였다면”보다 더 마블다운 틀이 하나 떠올랐다. 마블에는 이미 이런 상상을 위한 전용 포맷이 있으니까 — 디즈니+ 애니메이션 시리즈 〈왓 이프…?〉다. 워처가 관찰자로 등장해 분기점 하나에서 갈라진 멀티버스를 짚어주는 그 포맷. 브랜드 뉴 데이도 분기점 딱 하나만 바꾸면 왓 이프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잠깐 워처가 되어보기로 한다.
스파이더맨의 멘토가 데어데블이었다면?
모든 선택은 하나의 우주를 만든다. 극장 문을 나서며 던진 질문 하나도 예외는 아니다 — 배너의 강의실 문 대신, 피터가 다른 문을 두드렸다면 어땠을까.

브랜치 포인트: 배너의 강의실 대신 머독의 사무실
원래 시간선에서 피터는 ESU 교수가 된 브루스 배너를 찾아가 “기술로 헐크를 억제하는 법”을 배우고, 그 대화를 계기로 파워 억제 장치를 직접 만든다.
이 세계선에서는 피터가 그 강의실 문을 그냥 지나친다. 대신 〈노 웨이 홈〉에서 인연이 있던 변호사의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찰찰리 콕스(맷 머독 / 데어데블). 이번엔 법률 상담이 아니라 정신 상담이다. 평생 감각 과부하를 안고 살아온 사람답게, 맷은 피터에게 억제기 대신 변화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익혀보라고 권한다. 스틱에게 배운 그 방식 그대로.
멘토십의 성격이 통째로 바뀌는 지점이다. 배너의 조언은 “이 힘은 위험하니 눌러라”에 가깝고, 머독의 조언은 “이 감각은 네 것이니 길들여라”에 가깝다. 전자는 도구의 문제고 후자는 수련의 문제다.
그래도 억제기는 그대로 나온다
맷이 억제기를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해서, 피터가 후반에 진 그레이를 제압할 범용 억제기를 만드는 것과 모순되진 않는다. 하나는 자기 통제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위협 제압의 문제니까. 원래 시간선에서도 억제기는 배너가 만들어준 물건이 아니라 대화 이후 피터가 혼자 만든 물건이었다. 멘토만 바뀌었을 뿐, 발명가는 그대로 피터다.
파급 효과: 퍼니셔가 헐크의 자리를 대신하다

원래 시간선의 헐크는 〈엔드게임〉 이후 정체성을 못 잡고 계속 소모되기만 하는 캐릭터였고, 이번에도 진 그레이의 정신 조작에 당해 새비지 헐크로 폭주하다 정신병동에 실려간다.
이 브랜치에는 애초에 헐크가 없다. 그렇다면 진 그레이와 데미지 컨트롤 국장 메츠거의 대면 시퀀스에서, 스파이더맨의 시선을 붙잡아둘 역할이 하나 비게 된다.
그 자리를 퍼니셔가 채운다. 프랭크의 화력이 금고 문을 뚫고, 그 틈을 타 진 그레이가 국장과 대면한다. 대신 그 화력이 진 그레이를 향하려는 순간 스파이더맨이 프랭크를 막아선다.
여기가 이 브랜치의 핵심이다. 원래 시간선 초반에 프랭크는 피터에게 “진 그레이한테는 폭력을 써야 한다”고 종용했다. 클라이맥스에서 정확히 그 대칭이 만들어진다 — 초반엔 프랭크가 피터를 폭력 쪽으로 밀고, 후반엔 피터가 프랭크를 폭력에서 끌어낸다. 헐크가 담당하던 “통제 불능의 힘”이라는 주제가, 퍼니셔가 담당하는 “선택 가능한 폭력”이라는 주제로 바뀌는 셈이다.
헐크가 사라진 자리에서, 스파이더맨은 뜻밖에도 더 선명한 거울을 마주한다. 밀어붙이던 자와 말리는 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을.
그리고 모든 분기는 결국 또 다른 분기로 이어진다.
두 번째 엔딩 크레딧 — 자비에가 온다
왓 이프 특유의 재미 중 하나는 한 시간선의 결말이 다른 시간선으로 이어지는 떡밥 처리다. 그래서 이 브랜치에서는 엔딩 크레딧을 하나 더 쓴다. 마블 본편은 전통적으로 크레딧 쿠키가 두 개인데 이번 영화는 하나뿐이었으니, 비어 있는 두 번째 자리를 채워보는 거다.
원래 시간선은 진 그레이가 웨스트체스터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는 암시로 끝난다. 문제는 진 그레이가 자비에의 존재를 안다고 해도, 굳이 제 발로 먼저 학교를 찾아갈 이유는 딱히 없다는 것이다.
이 브랜치에서는 방향을 뒤집는다. 자비에가 세레브로로 급성장한 뮤턴트를 감지하고 직접 진을 찾아와 입학을 권한다. 엑스맨 코믹스가 수십 년간 써온 스카우트 공식 그대로다. 암시로만 남았던 떡밥을 크레딧 한 컷으로 명시적으로 회수하는 쪽이, 새 트릴로지의 엑스맨 합류 로드맵을 깔기에도 훨씬 낫다.

정리
| 항목 | 원래 시간선 | 이 브랜치 |
|---|---|---|
| 멘토 | 브루스 배너 (ESU 강의실) | 맷 머독 (변호사 사무실) |
| 멘토십의 방향 | 기술로 힘을 억제한다 | 감각을 수용하고 길들인다 |
| 클라이맥스의 견제 역할 | 헐크 (폭주 후 이탈) | 퍼니셔 (화력 → 피터가 제지) |
| 감정선 | 힘의 통제 불능 | 초반-후반 폭력 대칭 |
| 엔딩 크레딧 | 1개 (진이 버스에 오름) | 2개 (자비에가 직접 찾아옴) |
이 우주는 여기서 관찰을 마친다. 관찰자는 다음 갈림길로 이동한다.
여기서 다시 워처 코스프레를 벗는다. 다음 시즌 〈왓 이프…?〉 제작진이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혹시 본다면 연출은 부탁드립니다.

